질문등록
k00190 2021-01-03 오후 4:56:07
k80748 2021-01-03 오후 4:12:00

1. 에피쿠로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결정론적 세계관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여 이신론적 관점을 제시한다. 에피크로스는 인간의 삶이 신이 아닌 인간 스스로에 의해 결정 된다고 주장하였으며 모든 일은 우연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을 자유의지의 단초로 삼는다. 이와 같은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인간을 보다 자유롭고 안정 된 상태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했다.


2.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물의 모든 운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본성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의 근거는 근대에 이르러 과학적이지 않을 뿐더러 자연물에게도 이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현대의 일부학자들은 근대 사상가들이 목적론보다 기계론적 모형을 맹신 했을 뿐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내세우지는 못했다고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물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요소를 통해 자연물의 본성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엠페도클레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자연물이 물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3. 비트켄슈타인은 언어의 모호성이 철학적 논란을 발생 시킨다고 보아서 언어를 명확히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그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를 통하여 그림이론을 제시하는데 이에 따르면 모형과 사건, 언어와 세계, 명제와 사태는 각각 대응한다. 비트켄슈타인은 사태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이고 사실은 사태가 실제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둘을 구분한다. 또한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나 사태가 아닌 것은 의미 없는 명제로 규정하고 신, 영혼, 형이상학들을 의미없는 명제, 즉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4. 신채호는 아와 비아속의 아의 연대를 강조했다. 아에는 항성과 변성을 갖는 자성이 존재한다. 또한 개별적인 아는 소아, 국가와 사회 차원의 아는 대아로 구분하여 대아가 자성을 깨닫고 항성과 변성의 조화를 이루면 상속성과 보편성이 실현된다. 신채호는 조선 국민이 신국민이 되어야 하며 동양 주의는 조선민족의 아의 생존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5. 유학은 수기치인을 통해 성인이 되고자 하는데 이이는 성학집요를 통해 수기치인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율곡은 "이"는 변하지 않고 모든 공간에서 존재하는 반면 "기"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여 제한 된 공간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모두가 동일한 이를 갖기 때문에 기를 다스리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선 법전은 수교에서 시작되어 이법에 폐단이 없다고 판단 되면 록을 거쳐 대전에 오르게 된다. 율곡은 대전에 오르지 않는 문제가 있는 왕의 명령들을 고쳐 조종성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6. 17세기초부터 유입된 서학 서적 중 의학 분야의 지식은 조선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는데 이익은 아담셜의 주제군징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익은 아담셜의 주장 중 지각활동은 뇌가 주관한다는 것에 반박하여 심장이 지각활동을 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조선의 유교적 윤리는 해부학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지만 최한기는 홉슨의 저서 전체신론을 접한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몸기계론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다만 최한기는 홉슨과는 다르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뇌주지각설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심주지각설을 지지했다.


7.  (가) 과거제는 세습적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껏 관직에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학문을 수양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과거제가 천 년 넘게 시행 됐다는 것은 과거제의 합리적인 성겨깅 사회에 긍정적으로 사용 되었다는 근거가 되며 이는 유럽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나)과거제를 개선하라는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 되어 왔다. 과거제는 지식인들의 재능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학습이 실무능력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리들은 승진을 위한 단기간 성과를 우선시하여 지역사회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8.  북한론은 각 학자가 중요시하는 바에 따라 다르게 제시되었다. 박제가는 조선이 중화와 합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양반들도 이익을 따질 필요가 있다며 실용주의를 강조하였다. 이덕부는 객관적인 태도로 청의 모습을 서술하고자 하였으며 조선과 청의 가치를 모두 인정하였다. 

 (나) 18세기 후반 향촌 정기 시장과 은의 유입등을 통해 중국은 크게 성장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고 19세기에 접어들무렵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유대가 사라지고 정치에서는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지나친 경쟁은 불법적인 행동을 불러일으켰다. 통치자들 또한 정국에 불안을 느끼며 나라를 주변국가로부터 폐쇄하는 모습을 보였다.



k00293 2021-01-03 오전 10:43:59
k00366 2021-01-03 오전 2:34:39
k00366 2021-01-03 오전 2:31:25
k90285 2021-01-02 오후 11:46:50

예비고3 김다훈입니다. 8번지문 추가로 올립니다.

k90285 2021-01-02 오후 11:44:34

1.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은 신에 의해 우주가 운행된다고 믿는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서 에피쿠로스는 당대의 사람들이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고, 자연학을 바탕으로 사상을 전개했다. 에피쿠로스는 불사하는 존재인 신은 최고로 행복한 상태이며, 다른 어떤 것에도 고통을 주지 않고,모든 고통은 물론 분노와 호의와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신론적 관점을 주장했다. 한편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영혼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미세한 입자로 구성되기 때문에 사후에 신의 심판을 받지 않아 살아있는 동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은 우주와 인간의 세계에 대한 비결정론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원자의 운동에서 수직 낙하 운동, 우주역시 우연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인간이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윤리학을 자유의지의 단초로 삼는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자연물이 목적을 추구하는 본성을 타고나며, 외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본성에 따른 운동을 한다는 목적론을 제시하고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갈릴레이는 목적론적 설명이 과학적 설명으로 사용될 수 없다 주장하며, 베이컨은 목적에 대한 탐구가 과학에 무익하다고 평가하고, 스피노자는 목적론이 자연에 대한 이해를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근대 사상가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거부할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우드필드는 목적론적 설명이 과학적 설명은 아니지만, 목적론의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목적론이 거짓이라 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17세기의 과학은 실험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물질론으로 이어져 있으며, 물질론 가운데 일부는 모든 생물학적 과정이 물리 - 화학 법칙으로 설명된다는 화원론으로 이어진다.

3. 비트겐슈타인이 쓴 <논리 철학 논고>는 빈학파의 논리실증주의를 비론하여 20세기 현대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교통사고를 다루는 재판에서 장난감 자ㅗㅇ차와 인형등을 이용한 모형을 통해 사건을 설명했다는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언어가 세계에대한 그림이라는 그림이론을 주장했다. 언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가리키고있기 때문에 언어는 명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는 사태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림이론ㅇㅔ서 명제에 대응하는 사태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 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을 의미하고 사태가 실제롤 일어나서 사실이 되면 그것을 기술하는 명제는 참이 되지만, 일어나지 않으면 거짓이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기존의 철학자들이 다루었던 신,영혼, 형이상학적 주체, 윤리적 가치 등과 같은 논의가 경험 가능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에 의미없는 말들에 불과하다고 봤다.

4. 역사가 신채호는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아의 자성은 스스로의 고유성을 유지하려는 항성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려는 변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헸다. 신채호는 개별화된 개인적 아인 소아와 국가차원의 아인 대아로 구별하였다. 소아는 자성은 갖지만 상속성과 보편성을 갖지 못하지만 대아는 그 반대이다. 이것을 일본과 조선 민족에 대입하여 제국주의의 국가에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중과의 연대를 통하여 부당한 폭력과 억압을 강제하는 제국주의에 함께 저항할 수 있는 주체로 보았다.

(마지막 8번지문 사진이 등록중 요류때문에 파일에 추가가 안돼요)

herim3038 2021-01-02 오후 10:42:36

1.

에피쿠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두려움에 떨며 행복에 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삶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행복의 실현을 위해 이러한 두려움을 자연학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다. 그는 신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이신론적 관점과 원자의 우연적인 운동을 통해 우주의 필연성을 부정함으로써 행복이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또한 영혼이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며 육체와 함께 소멸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후 심판을 부정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였다. 그는 인간 스스로가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길을 제시하고 이를 쾌락주의적 윤리학을 통해 구체화함으로써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2.

첨단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제로 남겨져 있는 생명체의 존재 이유와 원리는 자연물의 구성요소를 탐구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물질론과 이에서 파생된 환원론을 부정하면서, 모든 자연물은 목적 지향적 존재라고 보았다. 그는 자연물이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내재적 본성과 이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타고났으며, 이는 반드시 실현되어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고 보았다.

 

3.

비트켄슈타인은 철학적 논란의 원인으로 언어의 명확하지 못한 사용을 지적하고 이를 그림 이론을 통해 명료화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언어와 세계가 대응하는 것처럼 각각을 구성하는 명제와 사태 또한 대응한다고 보았다. 그는 언어가 세계에 실재하는 것들을 지시하기에 의미가 있는 것과 같이, 의미 있는 명제가 되기 위해서는 실재하는 사태와 대응하여 경험적 세계에 다루고 있으며 진위를 가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의 감각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관념적인 것들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던 기존의 철학적 논란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명제가 되므로 의미 없는 말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4.

신채호는 조선 민족을 이루는 역사적 주체의식과 제국주의에 대응하여 생긴 국가정신과의 조화를 이룬 신국민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조선민족이 신국민이 될 때 민족의 생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일본을 중심으로 대항하는 동양주의는 조선 민족의 주체적 생존이 어렵다고 보며, 조선 민족 중 일본과 동화되지 않는 자들과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일본 민중과 연대하여 서구 열강에 대해 투쟁하고자 하였다. 그는 조선 민중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속에서 일본과 이에 동화된 자들이 휘두르는 정당하지 못한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며 인류가 인류를 억압하지 않는 자유 속에서 서구열강과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5.

율곡은 만물을 만물의 법칙이자 원리인 이와 끊임없이 변동하는 물질인 기와의 조화를 통해 만물을 설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전개된 수기를 위한 수양론 중 하나인 이통기국은, 천도와 합일되는 경지에 도달한 성인과 일반인의 기질에 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이를 갖기 때문에 일반인 또한 수양을 통해 기질을 변화시키면 천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인간을 넘어 사회의 폐단을 제거하여 천도를 실현하려는 경세론과도 이어지는데, 이이는 이를 통해 이인 왕도 즉 어진 정치를 위해 기인 법제의 변화를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법제개혁론을 통해 이인 대전 즉 조종 성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폐단이 있는 법령들을 고쳐야 함을 주장하며 직접 수기치인을 실천함으로써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6.

유입된 서학 일부의 우수성을 인정하며 심주지각설을 주장한 이익과 달리, 최한기는 몸기계라는 개념을 통해 기계론적 신체관을 인정하였다. 그는 기계적 운동이 외부적 원인이 아닌 자발적 원인으로 보며, 이에 대한 최초 원인을 유동적이며 형체가 없는 신기로 규정하였다. 그는 경험을 통해 신기가 지각 내용을 기억으로 저장하고 이를 통해 종합과 확장 곧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세계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주장한 신기의 중심에 있는 심이 지각 활동을 담당한다는 심주지각설은 그 결합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서양의학을 독자적으로 연결지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7.

() 과거제는 능력을 중시하는 합리성을 갖추며 익명성을 확보하고 명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통해 공정성 또한 확보하는 시험제도이다. 이와 더불어 과거제는 다수에게 사회적 지위의 이동가능성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유동성에 기여하며, 교육에 대한 동기를 고취시켜 교육의 확대와 지식의 보급에 기여하며, 도덕적 가치기준에 대한 광범위한 공유를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비록 경쟁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이를 위해 국가는 통과하지 못한 자들에게 특권을 줌으로써 이를 완화하고자 노력하였고, 이러한 우수성을 인정받안 서양에서도 도입됐다.

 

() 과거제는 뛰어난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체의 문제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합격을 위해 형식적인 학습이 주가 되었고, 많은 인재들이 장기간 수험생활로 재능을 낭비하게 되었다. 과거제의 근간이 된 능력주의적 태도는 시험뿐만 아니라 관리의 업무에도 적용되어 지역사회를 위한 정책보다는 개인의 성과를 위한 단기적인 결과만 중시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학습 능력 이외의 인성이나 실무능력을 평가할 수 없어 익명성의 문제점과 더불어 문제점에 대한 논의 일어나며 이를 지위세습이나 벽소와 같은 봉건적 요소로 보완하고자 하는 복고적인 시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8.

() 18C 청의 문물을 수용하자는 북학론이 대두되었다. 박제가는 절대적 중화론적 관점에서 청을 조선의 지향점으로 삼으며, 조선의 독자성을 우선시하기보다는 이가 합치되는 방향을 추구하였다. 명과의 의리 문제에 대해 그는 이미 오래된 일이며, 지켜야할 의리보다는 얻는 이익이 크다며 이용후생의 태도를 취했다. 이와 달리 이덕무는 청의 제도가 민생과 무관한 점이 있다며 이를 비판하였으나, 청 문물의 효용성을 무시하지 않는 이용후생의 태도와 더불어 평등견의 관점에서 모두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

18세기의 청은 대외무역의 발전과 이로 인한 은의 유입을 통해 이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번영은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인한 전통적 사회적 유대의 약화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결사조직의 결성을 야기하였다. 또한 인구 증가로 교육받은 지식인이 늘어났지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관료조직 규모의 정체로 인해 부정부패가 심해졌다. 서양과의 교류로 이러한 기류가 더욱 심해지자, 그들은 개방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취하기도 하였으나 위기가 본격화 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수만이 문제를 제기할 뿐이였다.


*나머지 부분이 복붙이 안된걸 뒤늦게 확인했는데,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다시 올립니다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