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등록
k10006 2021-01-07 오후 5:56:02
k10006 2021-01-07 오후 5:55:12
k10006 2021-01-07 오후 5:54:47
k10006 2021-01-07 오후 5:54:26
k10006 2021-01-07 오후 5:53:52
k10006 2021-01-07 오후 5:49:28
k00361 2021-01-04 오전 12:33:37

1. 에피쿠로스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의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자연학을 바탕으로 사상을 전개했다. 에피쿠로스는 신이 존재하나 존재 방식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고 보며 이신론적 관점을 주장한다. 그는 신은 인간의 세계를 결정하지 않으므로 인간의 행복도 자율적 존재인 자신에 의해 완성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그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라고 생각하여 따로 사후에 심판을 받지 않아 죽음에 대한 인간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근거가 된다. 그의 자연학에서는 자연과 우주가 법칙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우연적인 운동을 하는 등 신의 관여는 없으며 인간의 삶에서도 신의 섭리는 없다고 주장하여 그는 이를 자유 의지의 단초로 삼았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자연물이 목적을 추구하는 본성을 타고나며 내재적 본성에 따른 운동을 한다는 목적론을 제시한다. 그는 자연물이 목적을 실현할 능력도 타고나며 그 목적은 방해받지 않는 한 반드시 실현되고 이의 실현은 운동 주체에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근대에 들어 모든 사물이 생명력을 갖지 않는 일종의 기계라는 견해가 강조됨에 따라 인간 이외의 자연물도 이성을 갖는 것으로 의인화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비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거부할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이의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없어 이를 거짓이라 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환원론을 반박했으며 자연물이 물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본성이 단순히 물리,화학적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3. 비트겐슈타인은 많은 철학적 논란들이 언어의 애매한 사용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아 언어를 분석하고 비판하여 명료화하는 것을 철학의 과제로 삼았다. 이에 그는 언어가 세계에 대한 그림이라는 그림 이론을 주장하여 언어가 세계와 대응하는, 즉 언어가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언어는 명제들로 구성되고 세계는 사태들로 구성되어 서로 대응하고 있으며 이들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 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언어를 구성하는 명제들은 논리적 그림이며 경험적 세계에 대해 언급하는 명제만이 의미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기존 철학자들이 다루었던 경험 가능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4. 신채호는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 과정이라고 정의하였고 이러한 그의 사상에서 투쟁과 연대는 모순되지 않는 요소였다. 신채호는 '아'가 자기 자신과의 관계, 비아와의 관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상대성을 가진다고 정의하였으며 아의 자성은 항성과 변성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아를 소아와 대아로 구별하여 소아는 자성은 갖지만 상속성과 보편성을 못 갖는 개별화된 개인적 아, 대아는  자성을 갖고 상속성과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국가와 사회 차원의 아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대아가 자성을 자각한 이후 항성과 변성의 조화를 통해 상속성과 보편성을 실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환경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어 비아를 이겨낼 수 있다.


5. 유학은 수기치인을 통해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으로서 율곡 이이는 이기론을 바탕으로 '수기'를 위한 수양론과 '치인'을 위한 경세론을 전개한다. 우선 율곡은 수양론의 한 가지 기반으로 만물이 하나의 동일한 이를 공유하지만 다양한 기의 성질로 인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이통기국을 주장한다. 이 뿐만 아니라 율곡은 법제 개혁론을 펼치며 '이'라 할 수 있는 왕도나 오륜을 고치는 것이 아닌 법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6. 17세기 초부터 서양의 과학 지식이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19세기 중반까지도 서양 의학의 영향력은 미미하였다. 이 가운데 18세기 실학자 이익은 로마 시대의 생리설, 중세의 해부 지식 등의 그 우수성을 인정하고 내용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며 '심주지각설'을 고수하였다. 서양 의학의 유입이 더딘 한편 최한기는 뇌 기능을 중심으로 문제 의식을 본격화 하여 지각적. 생리적 기능에 주목하였다. 최한기는 인체를 '몸기계'로 비유하며 인체를 형체와 내부 장기로 구성된 일종의 기계로 파악하고 인체를 신기와 결부하여 인체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뇌주지각설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심주지각설을 더 유용하다고 판단하였지만 여기서의 '심'은 신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7. 동아시아 사회에서 오래 유지되었던 과거제는 능력주의적인 시험을 통해 합리성을 갖추고 있었다. 공정성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사회적 유동성도 증대시켰으며 여러 가지 사회적 효과를 가져왔다. 학습에 강력한 동기 부여를 통해 교육의 확대와 지식의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지식인 집단도 폭넓게 형성되었다. 한편 (나)에서는 과거제의 부작용에 대해서 언급하며 개혁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론


8. 북학파들은 연행록으로 기록하여 청의 문물제도를 수용하자는 북학론을 구체화하였다. 북학의 목적의식이 강했던 박제가는 청이 조선이 지향할 가치 기준이라고 생각하여 조선이 합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이덕무는 청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하여 무조건적 수용보다는 부분적 수용이 더욱 낫다고 주장하였다. (나)에서는 청의 급격한 경제 발전 이후 하락의 시대 속에서 나타나는 청의 치명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k00373 2021-01-03 오후 6:27:24